“부산의 커피 문화는 굉장히 프렌들리(Friendly·친근)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주에서 태어나 수상 이력도 서울에서 쌓았어요.
근데 여기 와보니 분명히 부산만의 커피 문화가 있더군요.”
사진=정형용 대표 제공 Ⓒcohwi_
“애환(哀歡) 뷰라고 할 수 있네요, 애환 뷰.(웃음)”
가파른 시멘트 언덕길을 지나 부둣가에 다다랐다. 바리스타 추경하씨가 창고에서 나왔다. 이런 곳에 고급스러운 커피 바(bar)가 있는 줄 모르고 주위만 몇 바퀴째 돌던 참이었다. 그는 “가장 부산스러운 뷰(view)”라고 소개했다. 어디서나 보이는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영도(影島)에 온 걸 실감케 했다. 코앞에 있는 육중한 바지선. 모모스 커피 바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이었다. 추씨가 다가왔다.
“커피는 분위기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광안리나 해운대 같은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우승한 추경하씨와 전주연 대표가 있다. 이 대회에서 6위로 입상한 직원도 있다. WBC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바리스타 대회다. 전(全) 세계 커피 업계에서 ‘모모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들이 아무리 부산 출신이라고 해도, 굳이 영도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추씨가 말했다.
“여기 보시면 영도 앞바다가 있잖아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름다운 바다와 다르죠? 거친 모습이에요. 영도는 소외된 지역이고 노령 인구도 많아요. 동구, 남포 지역과 함께 6·25 때 피란민들이 몰려든 곳이죠. 공장과 판자촌이 들어서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사람들이 많이 떠났고요. 그래서 저희는 로컬(local·향토) 기업으로서 부산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전국, 해외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그 옛날 부산의 애환을 보여주는 곳이 영도입니다.”
영도의 ‘애환’을 담으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부산에서 활동한 근현대 미술가 김종식 화백(金鍾植·1918~1988년)의 작품 〈귀환동포〉를 상품 겉면에 새겨 넣었다. 메뉴 가운데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 사탕’이 있었다. 영도 할머니 댁에 놓여 있을 법한 별사탕에 오렌지 즙을 넣고 에스프레소 밀크에 타 먹는 커피였다.
향을 음미하던 중, 유리벽 너머로 커피콩을 가공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로 들어오는 원두의 90% 이상이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모모스도 부산항을 통해 1년에 컨테이너 25개 분량의 커피콩을 들여온다. 13개국에서 온 300여 종류의 콩 400톤이다. 이렇게 다양한 커피콩이 들어오는 길목이니 부산은 ‘커피 만들기 쉬운 곳’일까. 아쉽게도,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부산 커피 업계에선 하나같이 “부산의 물이 커피를 만들기엔 불리하다”고 말한다. 부산의 물은 낙동강에서 끌어온다. 이곳 바리스타들은 낙동강 물에 미네랄과 기타 성분이 과하게 함유돼 있다고 지적한다. 추씨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인 그도 “부산의 물은 경도(硬度·물속에 칼슘염과 마그네슘염이 함유되어 있는 정도)가 높다. 물 자체에 들어간 성분이 많아서 커피 향의 발현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물을 한 번 더 걸러내기 위해 특수한 필터 설비를 들여놓은 곳도 흔하다. 하지만 추씨는 불리한 여건이 부산의 커피를 발전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커피는 사실 대부분이 물로 이뤄져 있잖아요? 간과하기 쉬운 물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짚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불리하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커피를 만들다가 국제대회에 나가면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리는 셈이 되죠.”
이처럼 커피에 유·불리한 점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이다 보니 부산의 커피 업계에선 정보 공유도 잦다. 남들은 선뜻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도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부산의 바리스타들은 이걸 커피 향에 묻어나는 ‘부산의 정(情)’이라고 표현한다.
김정진 뉴스커피 대표
부산진구 연지동에 있는 카페 겸 바리스타 트레이닝 센터 ‘뉴스커피’에서 김정진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이카와코리아 로스팅 챔피언십 1위에 올랐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김 대표도 자신의 비법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타지에서 현직 바리스타 분들이 교육을 받으러 오면 ‘부산 바리스타들은 참 순수하다’고들 말해요. 자기가 가진 걸 아낌없이 내놓는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좋은 생두(生豆)를 알게 되면 나만 팔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변에 다 알려줘요.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게 부산의 정(情)이라고 볼 수 있죠. 부산에선 모든 바리스타가 좋은 커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근데 사실, 레시피나 정보를 아무리 알려준들 100% 따라 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웃음). 누군가 제 비법을 잘 따라 하면 오히려 기쁘고요.”
부산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 ‘코스피어’의 정형용 대표는 부산의 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부산의 커피 문화는 굉장히 프렌들리(Friendly·친근)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청주에서 태어나 수상 이력도 서울에서 쌓았어요. 근데 여기 와보니 분명히 부산만의 커피 문화가 있더군요. 부산에선 바리스타들이 손님에게 말도 더 잘 걸고, 가깝게 지냅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부산의 어느 커피숍에 가도 바리스타들이 다 친근할 겁니다.”
산미의 매력, 부산에서 알려드릴게요
코스피어 정형용 대표
한국 브루어스컵 챔피언십(Korea Brewerscup Championship·KBrC) 우승 이력이 있는 정 대표가 직접 커피 한잔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진한 산미에 놀랐다. 입 안에 침이 돌 정도는 아닌, 맑고 가벼운 느낌의 부담 없는 정도였다. 커피 한잔과 함께 정 대표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 부산 사람들은 주로 어떤 커피를 좋아하나요.
“워낙 제각각이고 맛있는 커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지 특징은 있는데요,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추워도, 더워도, 아이스커피를 찾습니다. 부산은 다른 지역보다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느낍니다.”
― 빨대로 마시니까 산미(酸味)가 더 진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아닙니다, 제대로 느끼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를 온전히 맛보려면 빨대로 마시지 않는 걸 추천해요.”
― 부산 사람들은 산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것 같나요.
“부산은 확실히 예전부터 산미가 있는 커피에 더 익숙한 것 같아요. 요즘 수도권에서도 산미가 있는 커피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절대다수는 산미가 적은 커피를 소비합니다. 저는 식문화의 영향도 조금 있다고 봅니다. 남쪽 지방 음식이 아무래도 간이 더 세고, 새콤달콤한 음식들이 많잖아요? 자극에 익숙해진 식문화 때문에 낯선 산미에도 좀 더 관대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커피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산미’를 알아보기 위해 월드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World Cup Tasters Championship·WCTC)에서 우승한 문헌관 먼스커피 대표를 찾아갔다. 부산진구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부산을 출발점으로 ‘산미’의 매력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설명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커피 소비자들이 산미를 많이 어려워한다고 느꼈습니다. 커피에서 신맛이 나는 데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작 자기가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 산미라는 게 신맛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신맛과 단맛, 다양한 풍미가 어우러지는 게 산미이기 때문에 실제로 신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산미가 있는 커피를 소개해도 그렇게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도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은 산미에 대한 거부감이 국내 다른 지역보다는 비교적 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호기심이 모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私財 사재 털어 만든 ‘커피 박물관’
부산엔 커피 박물관만 두 곳이다. 둘 다 입장료가 무료다. 동구 좌천동에 있는 ‘국제커피박물관’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2000여 점의 커피 기구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부산진역이었던 이곳이 박물관이 된 계기도 독특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부산시민이 4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커피 기구들을 부산시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다른 한 곳은 부산진구 전포동 카페거리에 있는 ‘부산 커피박물관’이다. 여긴 아예 개인이 사재(私財)를 털어 만들었다. 이곳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현재는 박물관 위치를 옮기기 위해 임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이 있는 전포동에선 지난해 10월 부산진구가 주최하는 ‘전포커피축제’가 열렸다. 참여한 인근 업체만 98곳에 달했다. 이때 문헌관 먼스커피 대표가 커피 세미나(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부산 커피박물관 홍보도 진행됐다. 부산 커피박물관을 만든 김동규 관장은 “부산 커피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커피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 오늘도 세계 곳곳의 커피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INTERVIEW
도경백 베러먼데이 대표
카페인 충전소? 월요병 날려버리는 곳!
부산의 커피는 각자의 특색을 담고 있다. ‘베러먼데이’는 보다 큰 틀에서 ‘카페’의 개념을 바꿨다. 도경백 베러먼데이 대표는 카페와 함께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한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베러먼데이 클럽’이다. 도 대표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이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설레는 월요일을 제공하는 것이 그가 창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창업을 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베러먼데이(BETTER MONDAY)는 현대인들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회사입니다. 직장인들의 월요일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베러먼데이는 음료만 파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지식을 교류하는 장이 된다.
“베러먼데이 커피를 라이프스타일 드링크 숍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또 온라인에서도 직장인과 현대인들의 삶을 조금 더 개선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BETTER MONDAY 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러먼데이 1호점. 사진=베러먼데이 홈페이지
베러먼데이의 주요 고객은 직장인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BETTER MONDAY는 현재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BETTER MONDAY 커피를 통해 굉장히 많은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일상의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고요, 또 온라인에서는 BETTER MONDAY 클럽을 운영함으로써 직장인들이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베러먼데이는 2.5평의 컨테이너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베러먼데이의 창업 철학은 ‘즐거운 일상, 기대되는 월요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월요일은 자살률, 우울증, 퇴사율의 수치가 가장 높은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경백 대표는 ‘어떻게 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일주일의 시작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베러먼데이는 각 분야의 역량 있는 전문가 및 브랜드와도 협업한다. 지난 6월엔 전남 고흥군청과 ‘농산물을 활용한 음료 개발과 브랜드화(brand化)’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난해 7월엔 ‘푸드트래블’과의 MOU를 통해 직장인들을 찾아가 응원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했다. 버스 광고를 통해 ‘여름휴가비 100만원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김광주 기자
출처: 월간조선 monthly.chosun.com
사진=정형용 대표 제공 Ⓒcohwi_
“애환(哀歡) 뷰라고 할 수 있네요, 애환 뷰.(웃음)”
가파른 시멘트 언덕길을 지나 부둣가에 다다랐다. 바리스타 추경하씨가 창고에서 나왔다. 이런 곳에 고급스러운 커피 바(bar)가 있는 줄 모르고 주위만 몇 바퀴째 돌던 참이었다. 그는 “가장 부산스러운 뷰(view)”라고 소개했다. 어디서나 보이는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영도(影島)에 온 걸 실감케 했다. 코앞에 있는 육중한 바지선. 모모스 커피 바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이었다. 추씨가 다가왔다.
“커피는 분위기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광안리나 해운대 같은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우승한 추경하씨와 전주연 대표가 있다. 이 대회에서 6위로 입상한 직원도 있다. WBC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바리스타 대회다. 전(全) 세계 커피 업계에서 ‘모모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들이 아무리 부산 출신이라고 해도, 굳이 영도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추씨가 말했다.
“여기 보시면 영도 앞바다가 있잖아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름다운 바다와 다르죠? 거친 모습이에요. 영도는 소외된 지역이고 노령 인구도 많아요. 동구, 남포 지역과 함께 6·25 때 피란민들이 몰려든 곳이죠. 공장과 판자촌이 들어서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사람들이 많이 떠났고요. 그래서 저희는 로컬(local·향토) 기업으로서 부산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전국, 해외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그 옛날 부산의 애환을 보여주는 곳이 영도입니다.”
영도의 ‘애환’을 담으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부산에서 활동한 근현대 미술가 김종식 화백(金鍾植·1918~1988년)의 작품 〈귀환동포〉를 상품 겉면에 새겨 넣었다. 메뉴 가운데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 사탕’이 있었다. 영도 할머니 댁에 놓여 있을 법한 별사탕에 오렌지 즙을 넣고 에스프레소 밀크에 타 먹는 커피였다.
향을 음미하던 중, 유리벽 너머로 커피콩을 가공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로 들어오는 원두의 90% 이상이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모모스도 부산항을 통해 1년에 컨테이너 25개 분량의 커피콩을 들여온다. 13개국에서 온 300여 종류의 콩 400톤이다. 이렇게 다양한 커피콩이 들어오는 길목이니 부산은 ‘커피 만들기 쉬운 곳’일까. 아쉽게도,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부산 커피 업계에선 하나같이 “부산의 물이 커피를 만들기엔 불리하다”고 말한다. 부산의 물은 낙동강에서 끌어온다. 이곳 바리스타들은 낙동강 물에 미네랄과 기타 성분이 과하게 함유돼 있다고 지적한다. 추씨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인 그도 “부산의 물은 경도(硬度·물속에 칼슘염과 마그네슘염이 함유되어 있는 정도)가 높다. 물 자체에 들어간 성분이 많아서 커피 향의 발현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물을 한 번 더 걸러내기 위해 특수한 필터 설비를 들여놓은 곳도 흔하다. 하지만 추씨는 불리한 여건이 부산의 커피를 발전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커피는 사실 대부분이 물로 이뤄져 있잖아요? 간과하기 쉬운 물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짚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이 불리하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커피를 만들다가 국제대회에 나가면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리는 셈이 되죠.”
이처럼 커피에 유·불리한 점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이다 보니 부산의 커피 업계에선 정보 공유도 잦다. 남들은 선뜻 알려주지 않는 레시피도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부산의 바리스타들은 이걸 커피 향에 묻어나는 ‘부산의 정(情)’이라고 표현한다.
김정진 뉴스커피 대표
부산진구 연지동에 있는 카페 겸 바리스타 트레이닝 센터 ‘뉴스커피’에서 김정진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이카와코리아 로스팅 챔피언십 1위에 올랐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김 대표도 자신의 비법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타지에서 현직 바리스타 분들이 교육을 받으러 오면 ‘부산 바리스타들은 참 순수하다’고들 말해요. 자기가 가진 걸 아낌없이 내놓는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좋은 생두(生豆)를 알게 되면 나만 팔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변에 다 알려줘요.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게 부산의 정(情)이라고 볼 수 있죠. 부산에선 모든 바리스타가 좋은 커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근데 사실, 레시피나 정보를 아무리 알려준들 100% 따라 하는 건 쉽지 않거든요(웃음). 누군가 제 비법을 잘 따라 하면 오히려 기쁘고요.”
부산대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 ‘코스피어’의 정형용 대표는 부산의 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부산의 커피 문화는 굉장히 프렌들리(Friendly·친근)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청주에서 태어나 수상 이력도 서울에서 쌓았어요. 근데 여기 와보니 분명히 부산만의 커피 문화가 있더군요. 부산에선 바리스타들이 손님에게 말도 더 잘 걸고, 가깝게 지냅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부산의 어느 커피숍에 가도 바리스타들이 다 친근할 겁니다.”
산미의 매력, 부산에서 알려드릴게요
코스피어 정형용 대표
한국 브루어스컵 챔피언십(Korea Brewerscup Championship·KBrC) 우승 이력이 있는 정 대표가 직접 커피 한잔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진한 산미에 놀랐다. 입 안에 침이 돌 정도는 아닌, 맑고 가벼운 느낌의 부담 없는 정도였다. 커피 한잔과 함께 정 대표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 부산 사람들은 주로 어떤 커피를 좋아하나요.
“워낙 제각각이고 맛있는 커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지 특징은 있는데요,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추워도, 더워도, 아이스커피를 찾습니다. 부산은 다른 지역보다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느낍니다.”
― 빨대로 마시니까 산미(酸味)가 더 진해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아닙니다, 제대로 느끼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커피를 온전히 맛보려면 빨대로 마시지 않는 걸 추천해요.”
― 부산 사람들은 산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것 같나요.
“부산은 확실히 예전부터 산미가 있는 커피에 더 익숙한 것 같아요. 요즘 수도권에서도 산미가 있는 커피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절대다수는 산미가 적은 커피를 소비합니다. 저는 식문화의 영향도 조금 있다고 봅니다. 남쪽 지방 음식이 아무래도 간이 더 세고, 새콤달콤한 음식들이 많잖아요? 자극에 익숙해진 식문화 때문에 낯선 산미에도 좀 더 관대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커피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산미’를 알아보기 위해 월드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World Cup Tasters Championship·WCTC)에서 우승한 문헌관 먼스커피 대표를 찾아갔다. 부산진구 사무실에서 만난 문 대표는 “부산을 출발점으로 ‘산미’의 매력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표의 설명이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커피 소비자들이 산미를 많이 어려워한다고 느꼈습니다. 커피에서 신맛이 나는 데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작 자기가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사실 산미라는 게 신맛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신맛과 단맛, 다양한 풍미가 어우러지는 게 산미이기 때문에 실제로 신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산미가 있는 커피를 소개해도 그렇게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도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은 산미에 대한 거부감이 국내 다른 지역보다는 비교적 덜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호기심이 모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私財 사재 털어 만든 ‘커피 박물관’
부산엔 커피 박물관만 두 곳이다. 둘 다 입장료가 무료다. 동구 좌천동에 있는 ‘국제커피박물관’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2000여 점의 커피 기구를 보유하고 있다. 원래 부산진역이었던 이곳이 박물관이 된 계기도 독특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부산시민이 4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커피 기구들을 부산시에 기증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다른 한 곳은 부산진구 전포동 카페거리에 있는 ‘부산 커피박물관’이다. 여긴 아예 개인이 사재(私財)를 털어 만들었다. 이곳 관계자가 말한 바로는, 현재는 박물관 위치를 옮기기 위해 임시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이 있는 전포동에선 지난해 10월 부산진구가 주최하는 ‘전포커피축제’가 열렸다. 참여한 인근 업체만 98곳에 달했다. 이때 문헌관 먼스커피 대표가 커피 세미나(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부산 커피박물관 홍보도 진행됐다. 부산 커피박물관을 만든 김동규 관장은 “부산 커피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커피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 오늘도 세계 곳곳의 커피 유물을 수집하고 있다”고 했다.Ⓑ
INTERVIEW
도경백 베러먼데이 대표
카페인 충전소? 월요병 날려버리는 곳!
부산의 커피는 각자의 특색을 담고 있다. ‘베러먼데이’는 보다 큰 틀에서 ‘카페’의 개념을 바꿨다. 도경백 베러먼데이 대표는 카페와 함께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한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베러먼데이 클럽’이다. 도 대표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이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설레는 월요일을 제공하는 것이 그가 창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창업을 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베러먼데이(BETTER MONDAY)는 현대인들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회사입니다. 직장인들의 월요일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회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베러먼데이는 음료만 파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지식을 교류하는 장이 된다.
“베러먼데이 커피를 라이프스타일 드링크 숍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또 온라인에서도 직장인과 현대인들의 삶을 조금 더 개선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BETTER MONDAY 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러먼데이 1호점. 사진=베러먼데이 홈페이지
베러먼데이의 주요 고객은 직장인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BETTER MONDAY는 현재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BETTER MONDAY 커피를 통해 굉장히 많은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일상의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고요, 또 온라인에서는 BETTER MONDAY 클럽을 운영함으로써 직장인들이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베러먼데이는 2.5평의 컨테이너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베러먼데이의 창업 철학은 ‘즐거운 일상, 기대되는 월요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월요일은 자살률, 우울증, 퇴사율의 수치가 가장 높은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경백 대표는 ‘어떻게 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일주일의 시작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베러먼데이는 각 분야의 역량 있는 전문가 및 브랜드와도 협업한다. 지난 6월엔 전남 고흥군청과 ‘농산물을 활용한 음료 개발과 브랜드화(brand化)’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난해 7월엔 ‘푸드트래블’과의 MOU를 통해 직장인들을 찾아가 응원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했다. 버스 광고를 통해 ‘여름휴가비 100만원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김광주 기자
출처: 월간조선 monthly.chosun.com